사천성에서 티벳으로 넘어가는 기차는 성도와 충칭에서 번갈아 가면서 격일로 있는 듯 하다. 내가 선택한 날짜에는 충칭에서 출발을 했다. 2007년 4월 20일 아침, 나는 티벳으로 향하기 위해 우선 충칭행 기차에 올랐다.
충칭에는 두개의 역이 있는데, 아쉽게도 내가 성도에서 도착한 역과 티벳으로 가는 기차역은 틀린 역이더군. 하지만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들리기 위해 시내로 나가기로 결심한 나로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
가이드북에서 읽은대로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누군가 다가와 친절히 내가 타야할 버스를 알려준다. 버스 직원도 내가 내릴곳을 잘 알려주었지. 시내에 내려서도 별로 어렵지 않게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을 수 있었다. 지도가 없어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버스정류장 지도에 한자로 한국 뭐뭐 라는 곳이 표시되어 있었고, 옆사람에게 물어 잘 찾아갔지.
(충칭 가는 2층 열차의 모습)
(충칭역 앞의 모습)
(시내의 성)
(두리번 거리다 발견한 대한민국 임시청사 안내 표지판, 제대로 왔구나~~)
(대한민국 임시청사 입구)
기념관에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독립운동 관련 DVD 한편을 보고 기념관 내부를 둘러봤다. 역시 나는 민족주의 신봉자인지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김구 선생님, 윤봉길의사 이런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없었겠지.
(내가 국사에 약해서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독립에 힘써주신 분들)
(여기서 무슨일들을 하셨을라나...)
나오면서 기념관이 잘 유지되기를 기원하면서 20위안 성금을 냈다. 방명록에도 한자 적었지.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가 다시 읽고 싶어졌다.
독립청사를 잘 둘러보고 슈퍼에 들려서 2박3일 타게될 기차여행에 대비 사발면과 즉석덥밥 등의 즉석요리를 잔득 준비하고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정보에는 버스 정보가 없고... '화차, 화차~~' 외치며 버스운전기사에게 물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하지만 소득이 없다. 하지만 시간은 넉넉해서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에 가는 버스는 없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택시를 잡아탔는데, 방향이 영 아닌지 내리라고 하더군. 도대체 어떻게 가야하는거야 하고 헤메던 순간 구세주 한명이 나타나더군. 나를 어떤 여학생이 붙잡더니 전자사전으로 열심히 번역해 가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였다. 자신이 기차역까지 대려다 주겠다고... 저쪽에서 보고 있었는데, 안타까웠다고.
아이고 고마워라. 같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또 전자사전 열심히 두드린다. 번역된 내용을 읽어보니, 버스에는 소매치기가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내용. 버스에서 내려 어떤 건물로 들어가니 긴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출퇴근할때 오르내리는 7호선 대림역 에스컬레이터의 3배는 될 듯한 길이. 이 학생 아녔으면 역 찾느라 무지 헤맸거나 택시로 빙 돌아서 올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비 에스컬레이터비도 이 학생이 내줬다. 내가 돈을 내려하니 내손을 내리며 괜찮단다.
(에스컬레이터의 모습)
(나를 도와준 처자. 대학생인데 영어로 말하면 실수할까봐 부끄럽다며 손에 들고 있는 전자사전으로 열심히 번역해 나에게 보여주며 길 안내해 줬다. 찍을때는 몰랐는데 옆에 앉아 있는 처자는 하품을 입이 찢어지게...)
도와준 처자에게 고마워서 한국서 들고 온 초코렛 하나 주었다. 그리고 번역기 들고 열심히 대화 나누다가 수업들으로 간다기에 작별을 했지. 번역기로 대화를 하다보니 1시간 넘는 시간동안 나눈 문장은 10개 안팍... ㅋ 길도 안내해 주고, 말동무도 되주고 고마운 친구였다.
역 대합실 TV에서는 대장금 광고가 나오더군. 집에서 뒹굴거리며 대장금을 보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집나오면 고생인것을... 기차를 기다리며 회상에 젖어드는데, 오늘 받은 도움때문인지 어릴적 버스에서 받았던 도움이 생각났다. 수영강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데 버스를 잘못타 노량진쪽으로 가게되었고... 돌아갈 차비도 없고... 그 때 나에게 잘못된 버스를 탔다고 알려줬던 누나가 나에게 '차비가 없니?' 물어보며 나에게 차비를 주신거다. 거기에 집으로 향하는 버스까지 알아봐 주시고. 그 때 든 생각. '세상은 살고 볼 일이다. 내가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서라도...'
이제 2박 3일 동안 칭짱열차를 타고 티벳의 수도 라싸로 향한다. 세계일주를 처음 생각할때는 계획에 없었던 곳. 하지만 여행 정보를 수집하다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추가된 곳.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며 열차에 올랐다.
충칭에는 두개의 역이 있는데, 아쉽게도 내가 성도에서 도착한 역과 티벳으로 가는 기차역은 틀린 역이더군. 하지만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들리기 위해 시내로 나가기로 결심한 나로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
가이드북에서 읽은대로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누군가 다가와 친절히 내가 타야할 버스를 알려준다. 버스 직원도 내가 내릴곳을 잘 알려주었지. 시내에 내려서도 별로 어렵지 않게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을 수 있었다. 지도가 없어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버스정류장 지도에 한자로 한국 뭐뭐 라는 곳이 표시되어 있었고, 옆사람에게 물어 잘 찾아갔지.
기념관에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독립운동 관련 DVD 한편을 보고 기념관 내부를 둘러봤다. 역시 나는 민족주의 신봉자인지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김구 선생님, 윤봉길의사 이런분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없었겠지.
나오면서 기념관이 잘 유지되기를 기원하면서 20위안 성금을 냈다. 방명록에도 한자 적었지.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가 다시 읽고 싶어졌다.
독립청사를 잘 둘러보고 슈퍼에 들려서 2박3일 타게될 기차여행에 대비 사발면과 즉석덥밥 등의 즉석요리를 잔득 준비하고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정보에는 버스 정보가 없고... '화차, 화차~~' 외치며 버스운전기사에게 물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하지만 소득이 없다. 하지만 시간은 넉넉해서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에 가는 버스는 없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택시를 잡아탔는데, 방향이 영 아닌지 내리라고 하더군. 도대체 어떻게 가야하는거야 하고 헤메던 순간 구세주 한명이 나타나더군. 나를 어떤 여학생이 붙잡더니 전자사전으로 열심히 번역해 가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였다. 자신이 기차역까지 대려다 주겠다고... 저쪽에서 보고 있었는데, 안타까웠다고.
아이고 고마워라. 같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또 전자사전 열심히 두드린다. 번역된 내용을 읽어보니, 버스에는 소매치기가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내용. 버스에서 내려 어떤 건물로 들어가니 긴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출퇴근할때 오르내리는 7호선 대림역 에스컬레이터의 3배는 될 듯한 길이. 이 학생 아녔으면 역 찾느라 무지 헤맸거나 택시로 빙 돌아서 올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비 에스컬레이터비도 이 학생이 내줬다. 내가 돈을 내려하니 내손을 내리며 괜찮단다.
도와준 처자에게 고마워서 한국서 들고 온 초코렛 하나 주었다. 그리고 번역기 들고 열심히 대화 나누다가 수업들으로 간다기에 작별을 했지. 번역기로 대화를 하다보니 1시간 넘는 시간동안 나눈 문장은 10개 안팍... ㅋ 길도 안내해 주고, 말동무도 되주고 고마운 친구였다.
역 대합실 TV에서는 대장금 광고가 나오더군. 집에서 뒹굴거리며 대장금을 보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집나오면 고생인것을... 기차를 기다리며 회상에 젖어드는데, 오늘 받은 도움때문인지 어릴적 버스에서 받았던 도움이 생각났다. 수영강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데 버스를 잘못타 노량진쪽으로 가게되었고... 돌아갈 차비도 없고... 그 때 나에게 잘못된 버스를 탔다고 알려줬던 누나가 나에게 '차비가 없니?' 물어보며 나에게 차비를 주신거다. 거기에 집으로 향하는 버스까지 알아봐 주시고. 그 때 든 생각. '세상은 살고 볼 일이다. 내가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서라도...'
이제 2박 3일 동안 칭짱열차를 타고 티벳의 수도 라싸로 향한다. 세계일주를 처음 생각할때는 계획에 없었던 곳. 하지만 여행 정보를 수집하다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추가된 곳.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며 열차에 올랐다.